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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치즈 대부, 지정환 신부 오늘(13일) 숙환으로 별세 '향년88세

43 상디 0 74 2019.08.23 12:40

한국 치즈의 대부로 불리는 지정환(세례명·디디에 세스테반스·( Didier   t'Serstevens ·사진) 신부가 1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천주교 전주교구는 이날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고인의 시신을 중앙성당으로 옮기고, 장례 절차와 일정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 신부는 벨기에 브뤼셀 태생으로 벨기에계 한국인이다. 한국전쟁(1950~1953년) 여파로 인해 세계 최빈곤국에 속했던 우리나라에서 신부 생활을 할 것을 다짐해 부산항을 통해 1959년 가톨릭 신부로 부임했다. 이후 천주교 전주교구에 배속돼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성당의 보좌신부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1961년 부안의 주임신부가 됐고 여기에서 30만평에 달하는 땅을 간척해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줬다. 이후 1964년 임실군에 부임한 지 신부는 1967년 산양을 길러 산양유를 생산했다. 산양유가 잘 팔리지 않자 벨기에 부모님으로부터 2000달러를 받아 치즈 공장을 지어 치즈로 개발했고 이후 국내 최초로 치즈 공장을 설립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견학을 가 유럽의 치즈 기술을 직접 배워와 국내에 전파했다. 최초의 한국 치즈였다. 임실 치즈는 서울의 특급 호텔에 납품될 정도로 유통망을 넓혀갔다. 1972년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 국내 최초로 생긴 피자 가게에 공급된 모짜렐라 치즈도 지 신부의 공장에서 납품 된 것이었다. 이 모짜렐라 치즈는 한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치즈였다. 

이때문에 지 신부는 이 때문에 한국 치즈의 아버지, 임실 치즈의 대부로 불리게 됐다. 임실은 ‘한국 치즈의 본고장‘으로 떠오르게 됐다. 그러나 지 신부는 치즈 공장의 운영권, 소유권을 모두 주민협동조합에 넘겼다. 이후 임실치즈공장은 주민 협동조합으로 변경하였으며, 창립자인 지정환 신부는 운영권·소유권 등 그 동안 일구었던 임실치즈의 모든것을 조합에 전부 넘겼다. 임실치즈협동조합은 현재 임실축산협동조합으로 운영되며 200여호의 낙농 조합원 및 60여명의 임직원을 두고 있다. 


지 신부는 공의와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위한 운동도 열심이었다. 1970년대에는 유신 체제에 항거해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저항운동을 했고 시위 중에 경찰에 체포되어 국외 추방의 위기까지 갔다.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다. 당시 농촌 발전에 관심이 있던 정권은 치즈 산업으로 농촌 경제 육성에 이바지한 그의 공적을 인정해 추방 명령을 집행하지 않았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는 시민군에 제공할 우유를 차에 싣고 홀로 광주에 갔다가 참상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렸단 일화도 전해진다. 당시 지정환 신부는 1970년대부터 오른쪽 다리에 다발성신경경화증이 생겼고 이후 신체가 점차적으로 마비되며 목발과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1984년 중증장애인 뒷바라지에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재활센터 ‘무지개의 집’을 세웠다. 그는 이곳에서 누워지내야만 하는 중증 환자들의 욕창 치료와 운동 재활에 힘썼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받아 지 신부는 2002년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았으며 상금 1억원을 받아 사재를 털어 ‘무지개 장학재단’을 세웠다.
2007년부터 매년 장애인 학생 20~30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법무부에서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에게 수여하는 국적 증서를 받아 2016년 2월4일 창성창본하며 57년만에 한국 국적을 받게 됐다. 지 신부는 임실 지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적법은 2012년부터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 대해 특별귀화를 허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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